결혼식·장례식 화환 검증결과 10개 중 8개 재사용 충격!
많은 사람이 결혼이나 회갑, 장례와 같은 경조사에 화환으로 마음을 전한다. 화환은 상대방에게 보내는 인사이자 예의인 동시에, 내 얼굴을 대신하는 명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그 화환의 꽃이 싱싱한지, 오아시스(꽃에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는 깨끗한지 잘 살펴보지 않는다. 마음을 담아 주고받아야 할 화환을 마치 한약재처럼 재탕·삼탕하는 현장을 고발한다.
오전 9시, 서울 강북삼성병원 영안실. 그곳을 지키던 화환들이 바깥으로 옮겨져 검은색 스프레이를 뒤집어쓰고 있다. 영안실 관계자는 한 번 쓴 화환을 다른 곳에서 다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재탕을 막기 위한 절차다. 병원측에서 화환을 재탕한 이익을 챙기지 않나 하는 소비자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다. 담당자는 하루 평균 50~60개 정도, 많게는 100개에 이르는 화환을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고 밝혔다. 스프레이를 뿌린 화환은 서울 교외에 위치한 폐기장으로 옮겨져 최후를 맞이한다.
화환을 재탕하는 현장 포착
화환 재탕은 어디서 어떻게 이뤄질까? 기본적인 조사를 통해 서울 외곽지역에 대규모 화환 단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문제는 모든 화환 제작 업소가 재활용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유일한 방법은 직접 현장을 찾는 것. 일단 화환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예식장을 찾아가보았다.
서울 시내 모 예식장에서 예식이 끝나자 화환은 곧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향했다. 그 트럭을 따라갔다. 트럭이 향한 곳은 폐기장이 아닌 제3의 장소. 뒤를 쫓다 우연히 서울 근교의 비닐하우스 밀집 지역을 발견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화훼 단지였지만, 새 꽃을 볼 수 없다는 점이 특이했다. 며칠 간 지켜본 결과, 이곳이 바로 각종 행사장에서 수거한 헌 화환을 조금 손질해 새 화환으로 둔갑시키는 재탕 화환 공장임을 알 수 있었다. 헌 화환의 시든 꽃을 제거하고, 빈자리를 다른 헌 화환의 꽃으로 메워 새 화환을 만들기에 새 꽃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화환 공장 밀집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늦은 밤 트럭이 멈춰 서고, 여러 행사장에서 수거해온 화환을 안으로 옮긴다. 문제는 작업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것. 12시가 다 된 시각, 작업 도중 더웠는지 한 사람이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었고, 그 덕에 재탕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수거해온 화환을 새 화환으로 둔갑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여 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통상 헌 화환 2개로 새 화환 하나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재탕 작업이 이뤄지는 비닐하우스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밭에 숨어 네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마음을 담아 주고받아야 할 화환을 한약재처럼 재탕·삼탕하는 현장포착
종합병원 영안실 ‘재탕 연루’ 소비자 의심 없애려 스프레이 뿌려 폐기처분
비닐하우스에서 은밀한 재탕작업…수거화환 10분만에 감쪽같이 새것 둔갑
재탕한 화환이 시중에 얼마나 유통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형 업체 10곳을 선정해서 축하 화환을 주문했다. 경력 20년인 화훼 전문가를 초빙해 이들 화환을 검증한 결과, 놀랍게도 10개 중 8개의 화환이 적게는 10%, 많게는 80%까지 재사용 꽃으로 제작한 화환으로 밝혀졌다. 주문한 화환의 가격은 평균 10만원 내외. 결국 그 중에서 제값을 하는 화환은 단 2개뿐이었다.
전문가가 일러준 재탕 화환 구별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꽃의 개수가 많고 간격이 촘촘할수록 의심하라. 시든 꽃을 뽑아내고 남은 자리를 값싼 재생 꽃으로 채웠을 확률이 높다. 둘째, 꽃잎의 상처에 유의하라. 화환에 장식된 리본에 쓸리고 여러 차례 이동하면서 생채기가 나기 쉽다. 셋째, 구멍이 많이 뚫린 오아시스를 의심하라. 오아시스의 구멍은 시든 꽃을 뽑아낸 흔적이기 십상이다. 넷째, 사각지대를 잘 살펴보라. 보통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시든 꽃을 꽂게 마련이다.
시중에 재탕 화환이 이토록 성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화원의 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IMF 이후 지난 10년 간 시중의 화원 수는 대폭 증가했다. 농림부에 따르면, 전국 화원 수는 1997년 9500여 개소에서 2006년 1만5000여 개소로 늘었다. 문제는 이 시기에 개업한 화원의 상당수가 화환 제조 기술을 익히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따로 기술자를 고용해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상승하는 인건비가 화원 경영에 큰 부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소비자가 주문한 화환을 직접 만들기보다는 간편한 재탕 화환을 선호하게 되었다.
재탕 화환은 헌 화환 수거에서 시작된다. 재탕 업자들은 예식장이나 영안실, 각종 행사장을 돌며 헌 화환을 수거하는데, 이때 화환은 통상 개당 8000원 선에 거래된다. 이 과정에서 재탕 업자와 예식장, 영안실 관계자 간에 모종의 커미션이 오간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헌 화환을 새 화환으로 둔갑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3만원. 재탕 업자들은 이를 6만원에 화원에 넘기고, 화원은 소비자에게 10만원에 판매한다. 재탕 업자에게는 3만원, 화원에는 4만원의 이익이 남는 셈이다. 화원에서 직접 화환을 만들 경우 제조 단가는 8만원 상당. 화원 입장에서는 재탕 화환을 판매할 경우 오히려 2만원의 이익을 더 챙길 수 있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재탕 화환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재탕 업자와 재탕 화원의 결탁으로 정상 화환을 제작하는 업체는 경쟁력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한다.
가격 경쟁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재탕 업체는 최근 들어 더욱 대형화되는 추세다.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재탕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한 업체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업체는 한 달에 1000개가 넘는 재탕 화환을 공급하고 있었다. 현재 인구 30만~40만인 중소 도시에는 이 같은 재탕 업체가 5~6개 이상 존재하며 인근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재활용 화환 구별법>
색깔 바랜 화환 십중팔구 ‘재탕’
1. 꽃의 색이 바랜 경우
앞에서 봤을 때 전체적으로 다른 화환에 비해 꽃의 색이 바랬을 경우 재활용 화환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꽃이 햇빛을 오랫동안 받으면 탈색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나치게 많은 꽃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경우에도 재활용 화환일 가능성이 높다. 한 번 사용한 꽃은 시들게 마련인데, 이때 시든 꽃은 힘이 없어 다시 꽂아도 아래로 처진다. 따라서 듬성듬성 꽂으면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새 꽃으로 만든 화환보다 꽃을 빽빽이 꽂는 경우가 많다.
2. 꽃잎에 상처가 많은 경우
새 꽃은 꽃잎이 상처 없이 매끈하고 싱싱하다. 하지만 재활용 화환을 보면 대부분 꽃잎에 상처가 많이 나 있다. 이전 화환에 달았던 리본 때문일 수도 있고, 화환을 재활용하기 위해 이동하다 생긴 상처일 수도 있다.
꽃이 유난히 빽빽하거나 꽃잎 상처 많은 경우도 ‘요주의’
3. 오아시스에 구멍이 많은 경우
꽃을 오랜 시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해 물에 적신 오아시스에 꽃을 꽂는데, 재활용 오아시스는 꽃이 꽂힌 부분 외에도 많은 구멍이 나 있다. 이전에 꽃을 꽂은 흔적이다. 오아시스만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10~20%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아시스를 재활용한 화환도 꽃을 오래 보존하지 못해 바람직하지 않다.